시민행정신문 장규호 기자 | 예술계에서 ‘작가 호칭’은 단순한 직함이나 명패가 아니다. 그것은 공적 검증의 결과이며, 창작자가 예술계로부터 부여받는 신뢰의 상징이다. 특히 전시장에서 흔히 접하는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라는 호칭은 단순한 구분을 넘어, 작가의 창작 여정과 예술적 위치를 함축하는 상징적 언어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부 전시 현장에서는 추천작가라는 필수 관문을 생략한 채 곧장 ‘초대작가’로 부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절차의 생략이 아닌, 예술계 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이탈 행위이다.
국내외 대부분의 전시 기획 시스템은 작가 호칭을 일반적으로 ‘일반작가 → 추천작가 → 초대작가’의 3단계 체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조는 작가의 성장 과정과 기여도, 예술적 성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정하고 신뢰성 있게 명명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일반작가는 공모전이나 공개전시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며, 창작의 진정성과 기술적 완성도를 검증받는다.
추천작가는 일정 경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협회나 기획단의 공식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차후 초대작가로 승격될 수 있는 중간 관문에 해당한다.
초대작가는 작품성과 공공적 활동이 충분히 검증된 이로서, 전시 주최 측으로부터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인물로 직접 초청받는 최상위 등급의 작가를 의미한다.
이처럼 호칭은 작가 개인의 브랜딩 수단이 아니라, 예술계가 공동체적 검증을 통해 부여하는 ‘공적 신뢰의 표식’이다.
추천작가를 거치지 않은 초대작가? 상식 없는 전시 구조의 붕괴
‘추천작가’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일정 기간 동안 꾸준한 창작 활동과 공모 이력, 전시 참여 등을 통해 예술적 정체성과 고유한 표현력을 검증받은 이들만이 그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는 단순한 서열이 아니라, 예술계가 작가를 공식적으로 육성하고 평가하며, 신뢰를 부여하는 제도적 통로다.
하지만 최근 일부 전시에서는 이러한 중간 단계를 무시하고, 검증 절차 없이 곧바로 ‘초대작가’로 지칭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이는 추천과 초대의 개념조차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호칭 시스템을 장식용 이름표로 전락시키는 자해 행위에 가깝다.
“추천 없이 초대작가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예술계의 신뢰, 순환, 성장, 그리고 공동체적 검증이라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초대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작가가 초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잘 그려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성실한 활동을 통해 예술계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로부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문을 여는 첫 단계가 바로 ‘추천’이다.
작가 호칭의 위계는 위신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검증의 구조에 대한 존중이다. 이 질서를 무시하고 추천작가 단계를 생략한다면, 결국 작가 등급 자체는 무의미해지고, 관람객에게도 작가 호칭은 신뢰의 기준이 되지 못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왜곡된 구조는 신진작가의 성장 동기를 꺾고, 추천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갖고 있던 교육적 의미, 예술계 안에서의 사회화 기능 또한 붕괴시킨다.
작가에게 붙는 ‘추천’과 ‘초대’라는 호칭은 결코 가볍게 주어져선 안 된다. 그것은 예술계가 창작자에게 내리는 공식적인 판단이자, 예술의 품격과 공공성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질서다.
초대작가의 권위는 추천작가 시스템 위에 세워져야 한다. 추천 없이 초대가 가능한 구조는, 제도적 신뢰를 잃어버린 예술계의 자화상에 불과하다.
예술은 이름이 아니라 내용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이름에 걸맞은 과정 없이 호칭이 먼저 주어진다면, 그 이름은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다.
지금이야말로 예술계 전체가, ‘이름보다 먼저 지켜야 할 신뢰’의 무게를 다시금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