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행정신문 이준석 선임 기자 | 1992년, 세계불교사에 있어 하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세계불교평화의 날’ 제정 공포이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의 선포를 넘어, 분열과 갈등 속에 놓인 인류를 향한 불교적 평화 정신의 공식적인 선언이자, 종교를 초월한 인류 공동의 가치로서 ‘평화’를 제시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선언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부처님 오신 날을 ‘세계불교평화의 날’로 제정·공포함으로써, 탄생의 기쁨을 넘어 인류 전체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보편적 메시지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가 특정 종교의 경계를 넘어, 세계 인류를 위한 평화의 길을 제시하는 실천적 종교임을 분명히 한 상징적 결정이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선언은 세계불교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스님의 깊은 사상과 실천적 원력에서 비롯되었다. 스님은 불교가 단순한 신앙 체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고통을 덜고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이 뜻깊은 날을 제정하였다.
특히 이번에 조명되는 친필 휘호는 그러한 선언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상징적 작품이다. 힘차면서도 유려한 필체로 완성된 이 작품은 단순한 서예를 넘어, 법왕의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인류를 향한 자비의 서원이 응축된 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먹의 깊은 농담과 과감한 필획은 마치 한 시대를 관통하는 울림처럼 다가오며,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성찰을 이끌어낸다.
이 휘호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곧 하나의 정신적 선언문이며,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의 메시지이다. ‘세계불교평화의 날’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니는 의미는 불교 내부의 화합을 넘어, 전 인류가 공존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보편적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은 냉전 체제가 종식되며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지역 분쟁과 이념 갈등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세계불교평화의 날’ 제정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인류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대안 제시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는다.
일붕 서경보 스님은 평화를 이상이 아닌 실천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그는 교육, 문화, 국제 교류를 통해 불교의 평화 사상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인류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고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친필 휘호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자, 후대에 전해지는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다.
현재 이 작품은 담화총사에 의해 소장되며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 불교 평화 정신의 계승과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오늘날 다시금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마주한 인류에게 이 휘호가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결국 ‘세계불교평화의 날’ 제정 공포와 그 정신을 담은 친필 휘호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평화는 멀리 있지 않다. 그 시작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깨우는 힘, 그것이 바로 일붕 법왕이 남긴 이 휘호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