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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무한을 세운 철의 언어, 조르주 뒤 봉 작가의 무한대의 다리"

- 서울올림픽이 남긴 문화외교의 상징, 인간과 우주를 잇는 보이지 않는 구조

시민행정신문 이준석 선임기자 | 철은 땅에 서 있고, 정신은 하늘을 건넌다. 푸른 하늘을 찢듯 솟아오른 철의 기둥들. 그것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사유이며, 한 인간이 평생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한켠에 우뚝 선 이 작품, ‘무한대의 다리(Infinite Bridge)’는 멕시코 출신 조각가 조르주 뒤 봉(Jorge Dubon)이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며 기증한 작품이다.

 

이 조형물은 단순한 공공미술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를 잇고,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외교의 다리다.

 

불완전한 구조, 완전한 질문
작품을 바라보면 기둥들은 결코 평행하지 않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어긋나며, 긴장 속에 서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며, 사회의 구조다.

 

완벽하게 곧은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균형 또한 없다. 그러나 그 불완전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만든다. 조르주 뒤 봉은 바로 그 ‘방향성’을 철이라는 물질 위에 새겨 넣었다. 그의 조각은 형태가 아니라 질문을 세우는 예술이다.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녹이 스며드는 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녹은 파괴가 아니다. 완성이다. 시간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구조. 이것은 서구 조형미학을 넘어
동양의 사유와 깊이 맞닿는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 진리가 있다.” 녹슨 철기둥은 유한한 육신을 상징하지만, 그 방향은 끝없이 하늘을 향한다. 이는 곧 인간 존재의 본질과 유한 속에 깃든 무한을 드러낸다.

 

자연과 인간, 그 사이의 선언
이 작품은 숲 속에 서 있다.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나무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철의 기둥은 이질적이다.

 

그러나 그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이것이 조르주 뒤 봉이 말하는 세계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의미를 남기는 방식이 바로 예술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건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다. 왜인가. 그것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의식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건너고 있다.

 

현실에서 사유로, 유한에서 무한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다리. 그것이 바로 ‘무한대의 다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세계와 연결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연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멕시코의 예술가가 한국에 남긴 조형물. 그 자체가 이미 문화외교의 완성된 형태다. 언어도 필요 없고, 번역도 필요 없다. 형태 하나로 인류의 질문을 공유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며, 외교를 넘어선 소통의 본질이다.

 

무한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이미 그 다리 위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