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행정신문 이존영 기자 | 이기자의 출근길 산책 서울 역사박물관

▲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 광화문 광장에 새워진 여유로운 우주 행성"웨스티"에서 온 흰디는 행복을 수집하러 다니는 모험가 입니다. 올 여름 행복을 찾아나선 흰디의 이번 여행지는 바로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입니다. (사진=시민행정신문)






▲ 흥선대원군의 조부 은신군의 신도비 등
가운데의 비석이 은신군신도비 왼쪽 것이 은신군묘표
그리고 오른쪽의 비석이 은신군 진(1755-1771)은 정조의 동생이며 계보상 흥선대원군에게는 조부가 된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17세의 젊은 나이에 제주도로 귀양 가 죽었다. 요절한 그를 위해 정조는 즉위 후 점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주었고, 다음 임금인 순조는 인평대군의 후손 남연군으로 하여금 그의 가계를 잇도록 하였다.
은신군신도비는 1783년(정조7)에 건립되었는데, 형인 정조가 직접 글을 짓고 손수 글씨를 써서 세웠다. 본문에는 은산군의 죽음에 대하여 애통해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의 이력과 인품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정조의 문장 솜씨와 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은신군묘표는 1871년(고종8)에 건립되었으며 이재원이 짓고 이재이 글씨를 썻다.
이 묘비는 은신군이 죽고 약 100년이 지난 다음에 건립되었는데, 1871년 2월 그의 시호가 소민에서 충현으로 개정된 다음에 세운 것이다.
낙천군묘표는 낙천군 온(1720-1737)의 묘비이다. 1764년에 건립되었으며 본문은 김광진 기록하고 글씨는 신광수가 썼다. 낙천군은 본래의 아들인데, 계보상으로는 연령군의 아들이자 은신군의 부친이 된다.






▲ 경희궁지
사적 / 1617 년(광해군9)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이곳은 조선시대의 5대 궁궐로 꼽히는 경희궁 터다. 경희궁은 광해군 때 창건되어 조선 후기 동안 중요한 궁궐로 자리매김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지만 영조 때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 부르는데 이말과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고도 하였다.
원래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과 편전인 자정전 외에도, 임금의 침전으로 융복전과 회상전이라는 두 개의 침전이 있었으며, 흥정당과 장락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이 지형에 맞게 어우러져 있었다. 궁에는 정문인 홍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홍원문, 서쪽에는 숭의문, 남쪽에는 개양문, 북쪽에는 무덕문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소유가 넘어가면서 전각들이 철거하여 이전되었고 궁역이 축소되어 궁궐로서의 웅장한 면모를 잃었다. 지금의 경희궁은 몇몇 전각들이 복원되었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이 사라지고 궁궐터도 많이 축소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 느티나무 약 380년, 높이는 약 19미터







▲ 광화문 광장 아침 모습